영업장/문학 작품

Review_개선문 #레마르크

by 하찮은 공방 주인 2023. 5. 30.
728x90

 

"우리는 죽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라비크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은 현실적이면서도 깊은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의, 1930년 파리. 독재 사회가 만연한 시대에 주인공인 라비크는 외과의사의 신분을 지녔음에도 돌아갈 장소를 잃은 떠돌이 이민자다. 그는 파리의 외면받는 지하 의료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며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를 찾아 헤맨다. 과거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박해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에 시달리던 라비크는 어느 날 센 강 위에서 여배우인 조안을 만나게 되고, 늦은 밤, 다리를 건너는 그녀의 아슬아슬한 모습에 참지 못하고 참견을 하게 되면서 그녀를 돕는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진심을 나누면서도 그 두 사람은 "진실"을 고백하지는 못했다. 서로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그럼에도 애달프게 서로를 아끼며 간절히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정치적 긴장과 임박한 전쟁의 전운이 드리운 도시의 상황은 두 사람의 행복을 시시각각 위협한다. 이토록 평화롭고 넘치도록 행복한 순간이 지나가면,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무너트릴 더 큰 불행의 폭풍이 다가올 것임을 예감하게 되는 것이다. 

 

 

"안 죽지, 우리는. 단지 시간만이 죽는 거야. 그 저주받을 시간만이.
시간은 언제나 죽어 가거든. 우리는 살고 있는데. 언제나 살고 있지..."

 


 책 전반에 걸쳐 전쟁이 물리적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에게까지 미치는 결과를 그린 것이나, 크나큰 상실과 파괴적인 트라우마의 영향까지 생생하게 표현된 모든 감각들은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소설의 긴장감을 훌륭하게 구축하여 슬픔에서 분노, 희망에서 절망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등장인물들이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짐들은 (내적이거나 외적인 것들) 스스로를 무너트리는 가장 큰 원인이 되면서도,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힘으로 탈바꿈되어 인간 정신의 회복력과 결단력으로 구현된다.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변치 않는 인간관계의 힘은 얼마나 위대한가. 인간의 정신이란 이토록 의연하고 강인하면서도 애처롭고 나약하다.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소설의 몰입감 넘치는 배경과 세밀한 묘사, 서정적인 심리 서술 또한 수준이 높다. 작가의 글에는 날 것 그대로의 인간 감정의 본질을 파헤치는 날카로움이 담겨있다. 끝내 이야기는 비극적인 엔딩에 다다르고, 소설은 끝을 맺지만, 주인공 라비크에게 있어서의 [개선문] 이란 어떠한 장소이며 의미인가를 떠올려보면 아직도 깊은 여운에 잠기게 된다.

 

 

당신이 눈을 뜰 때는 봄이고, 잠들면 가을이야.
그동안에 몇 번의 겨울과 여름이 지나갔지.
그러니 우리가 깊이 사랑을 하는 때 우리는 영원과 불멸이 되는 거야.
바로 심장의 고동이나 비나 바람과 같은 거야. 굉장한 거야.
우리는 하루하루 승자가 되고 정다운 애인이 되는 거야."

 

 

한줄평

 

살면서 한 번은 읽어볼 만한, 감정이 충만한 작품. 

 

 

반응형

댓글